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덕천(德川) 사람이다.
1904년 일본공사관의 황무지개간 요구 등 충격적인 사건이 계속되자 각 지방에서 의병이 일어나고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종유계(宗儒契)가 조직되어 구국항일 투쟁에 나섰다. 그중 평안도지방의 종유계는 일제의 앞잡이 일진회(一進會)의 타파에 나섰는데 1904년 하순에 한학자인 그는 덕천군 의병인 종유계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일제의 침략이 더욱 노골화되자 의병장 유인석(柳麟錫) 휘하에 들어가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운동시에는 덕천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1920년에는 이윤실(李潤實)·정계록(丁繼祿)·정붕익(丁鵬翼) 등과 함께 다수 청년들을 규합하여 만주 삼원보(三源堡)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 덕천지단(德川支團)을 조직하고 동단의 총무가 되어 군자금 모집과 독립사상 고취에 주력하였다.
한편 진명단(盡命團)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덕주령(德周嶺)에서 우편차를 습격하여 호송일경을 사살하고 군자금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인근 각 지단과 연락하여 덕천, 맹산(孟山), 영원(寧遠)의 일경주재소를 일시에 폭파하고자 하다가 1921년 6월에 일경에 체포되었으며, 1922년 2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6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98·514·521·522·524·54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75면
- 동아일보(1921. 6. 15, 9. 25, 10. 16, 10. 28, 1922. 1. 25,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