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9권(2024년 발간)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구규회는 한국 독립의 희망을 품었다. 그리하여 3월 15일 오전 10시 공립신녕보통학교 1학년 교실 밖 복도에 ‘대한독’이라고 먹으로 써서 항일의 의지를 피력하였다.
3월 26일 부훈도(副訓導) 박필환(朴弼煥)이 학생들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만세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듣고 학생들을 불러모아 독립만세 시위를 계획했다. 이를 위하여 황정수(黃正秀)·김호용(金浩溶) 등과 함께 태극기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체포되어 1919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 1919. 5. 10)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66~36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