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8월 서울에서 국외독립운동기지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입국한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5년 을사늑약 반대 상소, 1919년 파리장서운동, 1925년 2차 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였다.
곽윤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승희(李承熙)ㆍ장석영(張錫英)ㆍ이두훈(李斗勳)이 이끄는 상소운동에 참여하였다. 1905년 12월 을사5적 처단과 을사늑약 파기를 주장하는 상소에 300여 명의 경상도 유생들과 함께 연명하였다.
1919년에는 파리장서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26일 김황(金榥) 등과 함께 상경하였다. 병중에 있는 숙부 곽종석(郭鍾錫)을 대신하여 윤충하(尹忠夏)ㆍ김창숙(金昌淑)을 만나 독립청원운동에 관해 협의하고, 곽종석을 대표로 추대하며, 독립청원서 집필을 위촉한다는 계획을 거창의 다전(茶田)으로 돌아와 곽종석에게 전달하였다. 곽종석은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장석영과 김황이 작성한 초안을 토대로 김창숙과 논의하여 수정과 삭제를 가하였다. 곽윤은 이를 정본(正本)하고, 미투리 날줄로 꼬아 숨겨가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을 '곽종석본'이라 부르는데, 김창숙이 가져간 '곽종석본'은 한 차례 더 수정을 거쳐 파리강화회의에 제출되었다.
1925년에는 김창숙이 내몽고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전개한 2차 유림단의거에 참여하였다. 1925년 8월 서울에서 자금 모집을 위해 입국한 김창숙을 만나 협조를 약속하였다. 10월에 김창숙ㆍ김황ㆍ송영우(宋永祐)ㆍ손후익(孫厚翼) 등과 함께 신건동맹단(新建同盟團)을 결성하고, 주로 경북 일대의 책임을 맡아 봉화군 권철연(權喆淵), 달성군(達城郡) 원대동(院垈洞) 최해윤(崔海潤) 등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先文別集(張錫英, 간행연대 미상, 필사본) 義 101~103면
- 朴殷植全書(檀國大 東洋學硏究所, 1975) 上권 602면
- 심산김창숙선생투쟁사 벽옹일대기(心山記念事業準備委員會, 1965) 77~78, 108면
- 重齋先生文集(千字族譜社, 1998) 제13책 부록 23, 35~36, 77~78면
- 제2차 유림단 사건-독립운동사 자료집-(南富熙 編譯, 1992) 43~114면
- 重齋先生文集(千字族譜社, 1998) 제13책 부록 91면
- 每日申報(1928. 8. 9)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284~2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