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20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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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성천(成川) 사람이다.
1905년 16세 소년으로 이진룡(李鎭龍)을 따라 평산(平山)에서 의병에 참여하였고, 1910년 국치후 남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이주하여 항일투쟁에 전력을 다하였다.
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으며, 1920년 3월 백운한(白雲翰)·주상옥(朱尙玉) 등과 함께 일제주구인 평북 선천군 태산면장(宣川郡台山面長) 김병준(金炳駿)과 동 면서기인 김은기(金殷基)를 사살하였다.
같은 해에 독립단과 한족회 및 대한청년단 연합회가 광복군사령부로 통합되자 제2중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21년 2월에는 대장 이명서(李明瑞)와 함께 의주 고령삭면(義州古寧朔面)에서 일경 산구(山口)외 1명을 사살하였다.
1925년 고마령(古馬嶺)전투 후 임정 주만참의부(駐滿參議府) 제1회 행정회의에서 참의부가 개편됨에 따라 사령장 박응백(朴應伯)의 서기로서 전덕명(全德明)·유상엽(劉相葉) 등과 함께 무장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다.
1935년 입국도중 성천(成川)에서 일경과 교전하다가 한국원(韓國源)·김용민(金用敏)·김인제(金仁濟)·안희범(安熙範)·김치준(金致俊) 등과 함께 체포되어 1935년 10월 31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1936년 4월 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조국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년감 20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5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48면
- 동아일보(1935. 7. 27)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02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66·472·48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46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907·9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