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충남 당진(唐津) 사람이다.
그는 1904년 천도교 당진교구를 창설하고 천도교 중앙총부의 서무과 대표위원을 역임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에는 손병희(孫秉熙)의 명을 받아 독립선언을 위한 연락업무에 종사하였다.
그후 그는 1922년 11월에 조직된 민립대학기성회(民立大學期成會)에 참여하여 민족교육운동에 힘을 쏟았다.
1927년 12월에는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결합한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新幹會)의 경성지회(京城支會) 재정부 총무간사로 선임되어 지회를 이끌었다.
신간회는 첫째, 정치적·경제적 각성을 촉진하고, 둘째, 단결을 공고히 하며, 셋째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강령을 내건 민족유일당적 항일운동단체였다.
그는 1929년 1월 30일 신간회 당진지회를 조직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지방조직의 결성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일경에 붙잡혀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며 소위 요시찰인(要視察人)으로 지목되어 일경의 감시를 받다가 1929년 6월 6일 고문의 여독으로 순국하였다고 한다.
그의 장례는 지방 각급 사회단체의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636면
- 동아일보(1929. 2. 20, 6. 1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3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