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창원(昌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23일 경남 창원군 창원읍(昌原邑)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창원읍에서는 3월 23일과 4월 2일, 두 차례에 걸쳐서 대규모의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설관수(薛灌洙)가 배중세(裵重世)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입수하고, 읍내 중동 청년회관에서 신갑선을 비롯한 공도수(孔道守)·구재균(具在均)·김호원(金浩元)·조윤호(曺潤鎬)·조희순(曺喜舜) 등과 비밀리에 거사 준비를 논의하면서 시작되었다. 설관수는 입수한 독립선언서를 공도수에게 맡겨 500여 매를 등사케 하는 한편, 송석민·김호원에게 태극기 500여 장을 만들게 하고 3월 23일 장날 대규모의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준비단계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하였고, 이 때 신갑선도 마산·웅천·상남 등지의 연락과 인원동원에 대한 책임을 맡기로 했다. 그리고 조희순은 북면을, 구재균·김영근은 읍내를, 사치홍은 동면을 담당하기로 했다.
3월 23일 아침부터 시위군중들이 창원장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하여 6∼7,000여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들은 창원보통학교에 있는 대수정 앞으로 장소를 옮겨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거사의 취지를 설명한 뒤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신갑선은 4월 2일 제2차 만세운동에서도 7,000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총검으로 위협하여 시위는 중지되고 다른 주동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마산형무소에서 8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釜山·慶南三一運動史(三一同志會, 1979) 784面
- 高等警察關係摘錄(慶尙南道警察部, 1936) 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