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월 경북 영덕군(盈德郡) 영덕면(盈德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덕면의 만세시위는 영덕 읍내 교회 3곳의 감독인 강우근(姜佑根)의 주도 아래 기독교 구세군 참위(參尉) 권태원(權泰源), 기독교 장로교회 김세영(金世榮)ㆍ정규하(丁奎河) 등 기독교 교인들이 전개하였다. 기독교인들은 3월 18일 영덕 읍내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시위 계획을 알렸다.
김암우는 3월 16일 영덕 읍내 교회에서 강우근으로부터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이복이(李卜伊)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결정했다. 만세시위 날인 3월 18일 50여 명의 교인들과 태극기를 높이 들고, 시장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탄압에 나서 주도 인물 20명을 체포하고, 군중을 총검으로 위협하여 해산시켰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영덕지청(盈德支廳)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盈德支廳 : 1919. 5. 2)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1375~137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435~436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3) 별집 제7집 227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