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초순 경상북도 영덕군에서는 고종 국장을 참례하고 돌아온 인사들을 통해 3.1독립운동의 후속 시위가 계획되었다. 3월 11일 이후 북장로파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영해(盈海)와 영덕(盈德) 등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추진되었다. 3월 18일 영덕면 남석동(南石洞) 영해 읍내 시장에서 100여 명의 군중들이 ‘한국독립만세’를 연호하며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최명술은 신조경 등 남석동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읍내 시장에 있다가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시장에 있던 군중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는 고조되어 갔다. 영해경찰서(盈海警察署) 경찰이 출동하여 주도 인사 20여 명을 체포하여 경찰서에 구금하였다. 이후 영덕공립보통학교 학생과 졸업생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합세하여 약 700명이 구금 인사의 구출을 시도하였다.
최명술은 독립만세를 외쳤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5월 2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1919. 5. 2)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 경찰부, 1934) 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