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창수면(蒼水面) 창수동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인수는 이수각(李壽珏)·이현우(李鉉祐)·이현설(李鉉卨) 등과 함께 영해읍(寧海邑) 만세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영해로 가던 도중 창수동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마침 이곳은 도로공사로 인해 일제에게 전답을 수탈당하여 불평을 가진 농민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시위군중의 수는 약 1백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여 오후 4시경에는 창수 경찰주재소에 이르렀는데, 군중은 4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인수는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주재소를 습격하여 건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기물과 서류를 파기한 후 객사 및 주임순사 고목이삼랑(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소유물,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장총 3정과 대검 2개를 탈취하여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의류·식기까지도 완전 파기하고,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그 후 이인수는 일본 경찰의 대대적인 검속으로 붙잡혔으며, 미결기간 중 4개월 여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19.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