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군 숭일학교 교사 최병준과 수피아여학교(須比亞女學校) 교사 박애순(朴愛順) 등은 학생들에게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양태원은 당시 수피아여학교에 재학생이었다. 박애순에 영향을 받은 양태원은 독립만세운동에 기꺼이 참여했다. 3월 7~8일경 홍순남(洪順南) 등과 함께 태극기를 준비하였다.3월 10일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변 모래밭에 수백 명의 군중이 운집하였다. 이들은 주도자들의 개시 선언에 따라 만세를 부르며 작은 장터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양태원도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광주의 중심 시가를 행진하였다.
양태원은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19. 4. 3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