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28일 경북 성주군(星州郡) 성주읍(星州邑)에서는 이현기(李玄琪) 등이 성주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나 큰 규모로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그 후 송인집(宋寅輯)·이기정(李基定) 등은 군내 양반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고 초전면(草田面)의 양반 유생인 송회근(宋晦根)을 찾아가 송준필(宋俊弼) 등의 찬동을 구하고 동면의 송씨 일족과도 만나 거사계획을 협의하였다. 유림들의 찬동을 얻은 주도세력들은 기독교 측과도 뜻을 같이 하여 연합전선을 구축하였다.
성주 장날인 4월 2일, 주도자들은 사전에 제작해 둔 태극기를 몰래 지니고 장터로 나갔다. 주민들이 모여들자,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 뒷산에 모여 있던 기독교도들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여기에 호응하여 시장에 모여 있던 유림들이 독립만세를 연호하자 3천여 명의 주민들도 일제히 만세를 따라 불렀다. 그도 장터에서 시위대열에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장터 등지를 시위 행진하였다.
시위군중의 한 무리는 경찰서 앞에서 군청 앞과 양쪽 도로에서, 다른 행렬은 우편국 앞에서부터 시장에 이르는 도로에서 만세시위를 펼쳤다. 이때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경은 시위군중에게 발포를 감행하며 강제 해산에 나섰다.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밤 늦게까지 인근의 산과 시내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로 일경에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受刑人名簿(大邱地方法院)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65∼469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19.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