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19년 4월 9일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면 중동(中洞)에서 장지희(張祉熙) 등이 주도한 3.1운동에 참여했다.
4월 9일 석적면에서는 성곡동(城谷洞)과 중동에서 독립만세가 외쳐졌다. 4월 8일 밤 장지희・장영창(張永昌)・장도식(張道植) 3명은 중동의 인접 군(郡)인 성주군(星州郡)・선산군(善山郡) 마을 주민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운동을 시작한 것을 보았다. 특히 같은 날 밤 낙동강 건너 선산군 구미면(龜尾面) 임은동(林隱洞) 주민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을 보았다. 이들은 4월 9일 장지희의 형 장철희(張哲熙) 집에 모여 밤에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했다. 오후 9시경 이들은 마을의 동쪽 뒷산에 올라가서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김득룡・장영옥(張永鈺)・장영석(張永錫)・장영희(張永希) 등 20여 명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득룡은 만세운동 참가로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4월 23일 왜관헌병분견소에 구류되었다. 1919년 5월 12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기소되었다. 같은 해 5월 24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19. 5. 2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3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