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농업학교 학생으로서 기숙사에 기거하고 있었다. 이동운(李東運) 등 광주농업학교 기숙사 학생들은 최영균(崔暎均)에게서 3월 10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3월 10일 오후 3시 반경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변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군중과 더불어 광주농업학교 학생들은 작은 장터로 모였다.
황오봉은 만세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광주 중심 시가를 행진하다가 체포되었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무죄를 받았다. 그러나 일본 검사의 공소 제기로 인해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석방할 때까지 수감 생활을 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19. 4. 3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