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의 만세운동은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최병준(崔丙俊)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3월 1일 김복현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목격한 후 만세운동과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왔다. 3월 6일 김복현·김강은 송흥진 집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3월 10일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변에서 수백 명의 군중이 모였다. 시위 군중은 만세운동 개시가 선언되자 만세를 고창하였다. 숭일학교(崇一學校) 학생인 양만석 등은 군중에게 「독립선언서」와 「경고문」 등을 배부하며 만세운동 참여를 독려했다. 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작은 장터를 향해 줄을 지어 행진하였다. 군중이 작은 장터에 모였을 때 약 1,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들이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광주경찰서(光州警察署)을 거쳐 광주우편국(光州郵便局) 앞에 이르자 일본 군경은 무력을 앞세워 약 90여 명을 체포하였다.
양만석은 3월 10일 광주면에서 「독립선언서」 등 인쇄물을 배포하고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는 등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19. 4. 30)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