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4월 1일 밤 전라남도 해남군의 해남보통학교 기숙사에서 김규수(金奎秀)에게서 ‘독립만세운동’ 참여를 권유받았다. 이에 동의하고 같은 학교의 윤준하(尹俊夏) 등에게 참여를 권유했다. 4월 5일 김한식과 함께 같은 면 고도리(古道里) 손성옥(孫成玉) 집에 찾아갔다. 여기서 만세운동에 참여를 독려했다. 오후 3시경 김규수 등과 함께 ‘4월 6일 해남 장날을 이용해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으고 사전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임영식은 해남 읍내의 청년들에게 만세운동 계획을 알리고 참여를 권유했다.
4월 6일 임영식 등은 태극기를 제작했다. 학생들은 해남 시장에 모였지만, 그 수가 50여 명에 불과했으며, 만세운동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었다.
임영식은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전개하려다가 체포되었다. 5월 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長興支廳)에서 이른바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하여 6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6. 7)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3권 616~6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