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안성(安城)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안성군 이죽면 장원리(二竹面 長院里)에 거주하면서 이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안성군내의 3·1독립운동은 안성읍을 중심으로 여러차례 일어났으나 죽산방면의 독립만세는 안성읍보다 더욱 격렬하였다.
그는 유춘삼(柳春三)·박광순(朴光順) 등 동지 7명과 함께 거사계획을 세우고 동리 주민에게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고하였다.
1919년 4월 2일 죽산 장날 이들은 1,000여 군중이 운집한 앞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경찰주재소·우편소·면사무소를 거쳐 보통학교까지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고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기각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6. 6 京城地方法院)
- 判決文(1919. 6. 23 京城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73∼17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41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