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10일 전남 광주(光州) 시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학생신분으로 참여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김복현(金福鉉)·송흥정(宋興貞)·서정희(徐廷禧) 및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최병준(崔丙浚) 등에 의해 계획되었다. 나주면(羅州面) 금정(錦町)에 거주하던 김복현은 성명 미상의 청년으로부터 독립선언서 수천 매, ‘2천만 동포에 고함’이라는 격문 약 1백 매, 조선독립을 노래한 ‘독립가’ 약 100매 등의 인쇄물을 전라남도에 배포하라는 위탁을 받았다. 김복헌은 3월 6일 광주에서 송흥정·서정희·최병준 등과 협의한 끝에 학생 및 주민들을 동원하여 3월 10일 광주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정하였다.
거사 당일 김복현 등은 광주교(光州橋) 아래 모인 수백 명의 군중 앞에 나서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시장으로 나와 숭일학교 및 수피아여학교 학생 등 1,000여 명과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시위대는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서문통(西門通)을 경유하여 우편국 앞에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정몽석은 이날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여 독립선언서 등의 인쇄물을 배포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과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8. 13)
- 每日申報(1919. 5. 4)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19.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