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양칠은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 면민 약 400명은 면사무소 앞에 집결했다. 이인정(李
寅正)이 군중 앞에 나서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정미면(貞美面) 천의시장(天
宜市場)으로 나아가자고 연설했다. 군중은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천
의시장을 향하여 행진을 개시했다. 송재만(宋在萬)은 대호지면사무소부터 천의
시장까지 도로에서 인쇄된 애국가 약 400매를 군중들에게 배포했다. 천의시장에 도착한 김양칠을 비롯한 송재만, 한운석(韓雲錫) 등은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했다. 같은 날 오후 4시경 천의시장에서 군중이 철수하
려 할 때, 부근 염건피장(鹽乾皮場) 쪽에서 천의(天宜)경찰관주재소 순사 상원당
정(上原當定)은 순사보 이재영(李在英) 등과 함께 군중으로부터 태극기를 압수
하려 했다. 그러나 군중은 응하지 않았고 경찰이 권총을 발사했다. 군중은 크게
격앙되어 도주하는 순사들을 추격하여 붙잡았다. 김양칠을 비롯하여 군중들은
주재소에 투석하고 순사, 순사보를 응징하고, 주재소의 유리창과 현관 게시판
등을 부수었다.
이 시위로 체포된 김양칠은 12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다. 그러나 1920년 2월 7일 고등법원에서 상
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事件簿
- 判決文(高等法院:1920. 2. 7)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12. 24)
- 每日申報(1919. 11. 19)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2) 別集 2권 234면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