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박창신은 1919년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금광회사 동료인 안은(安銀), 한근수(韓根守) 등 여러 명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3월 27일 자택에서 동료들과 모여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다음날인 28일 오전 6시경 금광의 갱부 교대 시간을 이용하여 이들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선동하였다. 이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흔들고 천안군의 입장시장(笠場市場)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갱부 약 200여 명이 이에 합류하여 양대리(良垈里)까지 가두시위를 하였다. 이후 헌병의 저지로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박창신도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19. 5. 9)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6. 2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18~1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