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아산의 3.1만세운동은 3월 11일 온양에서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시작되었다. 3월 12일 보통학교 3~4학년 학생들은 동맹휴교 후 온양시장으로 나갔다. 오후 2시 30분경 학생 30여 명이 시장에 있던 군중 20여 명과 합세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거리를 행진하였다. 신창에서의 만세시위는 박민성(朴敏成)의 주도로 3월 18일 오후 1시경 읍내시장에서 일어났다.
4월 2일에는 이덕균(李德均) 등이 주도한 횃불만세운동이 있었다. 그는 정윤흥·박진화(朴秦和)·김양순(金良順)·김금복(金今福)·강순화(姜順和) 등과 함께 오후 8시경 읍내리 주민 200여 명과 학성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덕균이 관청을 쳐부수자고 제안하자 강달성(姜達成)이 군중들을 이끌고 면사무소로 갔다.
정윤홍 등이 면사무소를 향하여 돌을 던지자 군중들도 돌을 던져 문 3개를 파손시켰다. 오후 9시경에는 헌병주재소로 이동하여 유리창에 돌을 던져 깨뜨렸다. 오후 10시경에는 공립보통학교로 이동하여 교정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학교장이 학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지 못하게 저지하자 군중들은 격렬히 항의하였다.
이처럼 정윤흥은 1919년 4월 2일 학성산에서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고 면사무소, 주재소, 보통학교의 기물을 파괴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일 공주지방법원(公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19. 5. 2)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6~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