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4월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 일명 巴里長書)에 서명하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손병희(孫秉熙) 등 33인이 서울 태화관(泰和館)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김창숙(金昌淑)은 그 글을 읽고 통곡하며 "오직 3교(敎)의 대표가 그것을 주관하고 소위 유교는 1인도 함께 한 자가 없다"고 하니, 김정호가 "그대는 통곡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 수치를 씻을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김창숙은 "지금 유교인(儒敎人)으로 경성에 모인 자가 거의 수십만 명이니, 나와 그대는 급히 단결시키도록 함이 옳다. 손병희 등과 상호 호응하여 파리평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그들로 하여금 공의(公議)를 확장시켜 우리의 독립을 인정하게 한다면 우리 유림은 부끄럽지 않은 광복운동의 선구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날 밤 곽윤(郭奫)과 김황(金榥)을 초대해 전말을 상세히 알리고 그들로 하여금 곽종석(郭鍾錫)에게 가서 유림대표로 파리평화회의에 제출하는 서한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손진창은 1919년 경북 경주(慶州)에서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기 위해 곽종석(郭鍾錫) 등이 주도한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宇集(亞細亞文化社, 1984) 제4집 762면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934) 247~250면
- 國譯儒林團獨立運動實記-瀋中實記-(國譯儒林團獨立運動實記編纂委員會, 2001)
- 心山 金昌淑 先生 鬪爭史 ?翁一代記(心山記念事業準備委員會, 1964) 99면
- 3ㆍ1運動과 儒敎界(許善道, 3ㆍ1運動50周年紀念論集, 東亞日報社, 1969) 2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