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2월 28일부터 3월 2일 사이에 황해도 일부 군(郡)에 「독립선언서」가 배부되었다. 2월 28일 해주(海州)·연백(延白)·서흥(瑞興), 3월 1일 수안(遂安)·옹진(甕津)·황주(黃州), 3월 2일에 곡산(谷山) 등에 민족대표 33인 명의의 「독립선언서」가 교부되어 일반인에게 배포됐다. 3월 1일 해주 남본정 교회에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고 3월 2일 옹진과 황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일 일어났다.
3월 3일 전후에 금천군에도 「독립선언서」가 도착했다. 3월 3일 오후 서천면(西川面) 시변리(市邊里) 헌병분견소 헌병들이 시변리 시장 게시판에 「독립선언서」를 부착하려는 천도교도 2명을 체포 구금했다. 구이면(口耳面) 미당리(美堂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던 사람들도 덕안(德安)헌병주재소 헌병들에게 사전에 발각되어 제지를 당했다.
그리고 월성면 상리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의 시도가 있었다. 황인섭(黃仁攝)은 김구락(金九洛) 등과 함께 황의승(黃義承)의 협력하에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했다. 이들은 종전의 토산(兎山)의 중심지로 월성면의 면소지 당관리(堂官里)로 나아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시위를 추진했다. 그러나 토산헌병주재소 헌병들이 사전에 이를 탐지하고 주도자들을 체포함으로써 만세운동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황인섭은 토산헌병주재소 헌병에게 체포되고 ‘보안법 위반’으로 해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압송됐다. 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를 제기하여 7월 3일 유죄 판결을 받았다. 8월 28일 고등법원 상고가 기각됨에 따라 옥고를 겪었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8. 28)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4. 2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84) 제14권 97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50, 3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