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함흥의 만세시위는 기독교인과 학생이 주도했다. 기독교인들은 3월 3일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사전준비 작업을 하였다. 한편 함흥보통고등학교·함흥농업학교·영생중학교의 3~4학년으로 구성된 함산학우회에서도 은밀히 투쟁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영생중학교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영생중학교 학생들로 하여금 태극기 수천 장을 만들게 하였다.
3월 3일 오후 서문거리 모퉁이 집 지붕위에서 만세소리가 선창되면서 순식간에 함흥보통고등학교·함흥농업학교·영생중학교·영생여학교 학생과 시민 1,000여 명이 ‘독립만세’를 부르며 거리를 누볐다.
3월 8일에는 함흥의 북부지방인 기곡면에서 소규모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황인석·이수달(李洙達)·이수봉(李洙鳳)·윤정만(尹鼎萬)은 1919년 3월 8일 「조선독립선언서」를 읽고 그 취지에 감동하여 저녁에 서로 만나 그 마을 노상에서 주민 약 20명을 모아놓고 주도자가 되어 태극기를 휴대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율동산(栗洞山)으로 향하여 행진하였다.
황인석은 기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공소를 제기했다. 1919년 5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상고하였다. 하지만 1919년 6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5. 28)
- 판결문(고등법원:1919. 6. 26)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289~29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