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남 단천군(端川郡) 북두일면(北斗日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황승오는 단천군 북두일면 신덕리(新德里) 사람으로, 1919년 3월 10일 단천에서 천도교인들의 주도로 1,000여명의 군중이 헌병대 앞에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헌병의 발포로 수명이 희생당하고 다수가 부상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마을 사람들과 3월 22일 북두일면 대신리(大新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거사 당일 황승오는 대신리 헌병주재소 앞에서 5백 명의 시위대와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황승오는 1919년 6월 2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고,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03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23~724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