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함남 정평군(定平郡) 고산면(高山面)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5일 정평읍내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3월 중순을 넘기며 각 면으로 확대되어 갔다.
고산면에서는 3월 16일에 만세시위가 일어나 5차에 걸쳐 연쇄적으로 퍼졌다. 고산면 풍송리에 거주하던 황명률은 고산면 시위가 풍송리 헌병주재소의 탄압 때문에 제대로 되지 못하였으며, 그것을 원통하게 생각하는 주민들의 심리를 파악하여 바로 그들 눈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우리의 위세를 과시하자고 호소하였다. 이 호소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3월 18일 풍송리 헌병주재소 앞에는 약 1천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19일과 20일에 이르기까지 연 3일간 계속되었다. 그중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에는 시위대의 수가 무려 5천 명에 이르렀다.
시위 후 체포된 황명률은 1919년 5월 2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고,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9)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691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2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0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