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2일 황해도 황주군(黃州郡) 황주 읍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1일 황주읍 천도교구장 김성준(金聲駿)은 중화군(中和郡)의 최창룡(崔昌龍)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곧 천도교의 주요 인사들은 3월 2일 황주 장날을 이용하여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황기타는 독립선언서를 천도교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거사 당일 오후 2시경 황기타는 수백명의 천도교들과 함께 황주 읍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시위대열이 경찰서 앞을 지나갈 때 일경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제지하며 김병식(金炳植) 등 주동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분노한 군중은 경찰서로 몰려 들어가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며 유리창을 부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다시 읍내로 돌아온 시위군중은 예배당 앞에서 대열을 정돈하고 일제히 만세를 외쳤는데, 이때 예수교인들도 동참하여 인원은 더욱 증가하였다. 시위대열은 계속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마침내 읍내는 온통 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그러자 일제는 경찰과 소방조(消防組)까지 동원하여 감시와 순찰을 엄중히 하였다. 오후 5시경, 천교도들이 교구실로 들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일경이 교구실로 들이닥쳐 천도교도와 시위 참가자들을 무차별 연행하였다.
황기타는 이날 체포되어 평양지방법원과 1919년 5월 2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634~636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7. 12)
- 東亞日報(1922.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