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황해도 재령군(載寧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옥고를 치렀다.
재령군의 만세시위는 남율면(南栗面) 해창리(海昌里)에서 시작되어, 북율면(北栗面) 내종리(內宗里) 등지로 확산되었다. 남율면 해창리 출신으로 정주의 오산학교에 다니던 윤택진(尹澤振)은 3.1운동의 봉기와 함께 고향에 돌아와 기독교인들과과 태극기를 제작하여 1919년 3월 6일 밤 남율면 해창리 헌병주재소와 면사무소 앞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북율면 내종리에서는 3월 10일 목사인 윤문옥(尹文玉)의 주도로 상거동(上巨洞) 사립 숭의학교(崇義學校) 앞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황경용은 3월 10일 북율면 내종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숭의학교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황경용은 1919년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742~74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79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