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기도 수원(水原) 사람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3월 28일까지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 일대에서 홍면(洪冕)·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홍명선(洪明善)·김교창(金敎昌) 등이 주도하여 일으킨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홍태근은 3월 26일 오후 5시 송산면사무소에서 2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리고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인근의 산에 올라가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자 일본인 순사부장 야구광삼(野口廣三)이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려 하였다. 군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홍면(洪冕)을 비롯하여 시위 주동자 2명을 체포하여 꿇어 앉혀 놓았다. 그렇지만 홍면은 오히려 우뚝 일어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항거하였다. 그러자 순사부장 야구광삼이 권총을 발사하여 홍면의 어깨에 관통상을 입혔다. 홍면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면서 자기에게 발포한 일본 경찰을 죽이라고 외치는 광경을 본 시위군중은 일시에 분노하여, 야구광삼에게 달려들자 그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리 주재소 방향으로 도주했다.
격분한 홍면의 동생 홍준옥(洪逡玉)을 비롯한 장인 김명제(金命濟)·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김교창(金敎昌) 등은 이를 좇아 미처 주재소에 도착하지 못한 일본 경찰을 도로에서 포위하고 투석으로 격살시키는 등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로 붙잡힌 홍태근은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78∼386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9輯 43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16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