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1일 학생대표로 탑동공원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홍치학은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으로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들이 인사동의 태화관(泰和館)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있을 때, 학생들과 함께 탑동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시위군중과 함께 시내를 행진하였다. 그리고 3월 5일 아침 서울역 광장에서 전개된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만세시위의 선두에서 시위군중을 주도하며 남대문쪽을 향해 행진하였는데, 그 뒤를 학생·군중들이 만세를 고창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그 뒤를 따랐다. 이 시위 대열에는 평양(平壤) 학생 약 200명과 세브란스병원 간호사 등도 참가하였다.이때 길가던 사람들도 이 행렬에 뛰어들어 4~5,000명이던 시위군중은 어느덧 10,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시위행렬이 남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경비중이던 일경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러나 시위군중은 저지선을 뚫고 행진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던 강기덕과 김원벽 등 50여 명이 일경에게 붙잡혔지만, 시위행진은 계속되었고 보신각까지 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더욱 증강된 일본경찰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저지하자 시위군중들은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 많은 학생들이 중상을 입고 75명이 종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혔으나, 일경의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중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第14輯 116·117面
- 新韓靑年(新韓靑年黨, 1920) 創刊號 45面
- 朴殷植全書 上卷 581面
-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 (國家報勳處) 第7輯 8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