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수안의 3.1만세시위는 3월 2일 안봉하·나찬홍(羅燦洪)이 천도교 전도사인 홍길재와 천도교 수안교구실에서 조선독립운동에 관한 협의를 하였다. 3월 3일을 기하여 각 면의 천도교인들을 동원하여 독립선언과 독립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수안헌병분대를 접수하는 방법은 한청일(韓淸一)·홍석정(洪錫禎)이 담당하기로 하였다. 극비리에 태극기를 만들고 각지에 거사 계획을 알리는 동안 이를 파악한 헌병대가 주동자를 검속하기 시작하였다.
검속을 피한 천도교인들은 3월 3일 천도교 교구 앞에 모였다. 2개의 대형 태극기를 높이 세우고 130여 명이 만세를 부르며 금융조합 앞 큰 길을 지나 헌병분견대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흐르자 시위군중은 점점 증가했고 각지에서 천도교인 시위행렬이 읍내로 들어와 속속 합류하였다. 시위 군중들은 다시 헌병분견소로 진출하여 빨리 물러나라고 요구하였다. 결국 헌병이 무차별 발포를 하면서 시위대열이 무너졌다. 그러나 오후 1시경 다시 만세시위가 감행되었다. 헌병대가 다시 발포를 시작하면서 이날 9명이 죽고 18명이 다쳤다.
홍길재는 3월 3일 수안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는 원판결 중 소요는 취소되었으나 징역 1년 3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0년 11월 2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20. 11. 2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1991) 제15집 33~34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19권 194~196면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20. 8. 7)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