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6일 평남 용강군(龍岡郡) 해운면(海雲面) 온정리(溫井里)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호취훈은 2월 27일 진남포(鎭南浦) 신흥리(新興里) 교회에서 열린 한국기독교 선교 기념 모임에 참석하였다. 이곳에서 3월 1일 오후 2시 홍기황(洪基璜)이 독립선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 감명 받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년 3월 6일 온정리 장날에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에 적극 가담하여 군중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였다.
호취훈은 이날의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으나, 1919년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7)
- 龍岡郡誌(平安南道 龍岡郡民會, 1988) 527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별집 9권 368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0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