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龍仁) 사람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였다가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오광심(吳光心)·김효숙(金孝淑) 등과 함께 여군으로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2년에는 김학규(金學奎) 제3지대장의 인솔하에 일군의 점령지구를 돌파하여 오광심(吳光心)·이복영(李復榮)·신송식(申松植) 등과 함께 중국군 유격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부양(阜陽)에서 활동하였다.
1944년에는 부양(阜陽)에서 군사 교육 훈련을 마친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단의 1기 졸업생들과 함께 신송식(申松植)교관의 인솔하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중경(重慶)으로 갔으며,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다. 그곳에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였다가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오광심(吳光心)·김효숙(金孝淑) 등과 함께 여군으로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2년에는 김학규(金學奎) 제3지대장의 인솔하에 일군의 점령지구를 돌파하여 오광심(吳光心)·이복영(李復榮)·신송식(申松植) 등과 함께 중국군 유격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부양(阜陽)에서 활동하였다.
1944년에는 부양(阜陽)에서 군사 교육 훈련을 마친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단의 1기 졸업생들과 함께 신송식(申松植)교관의 인솔하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중경(重慶)으로 갔으며,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다. 그곳에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경기도 용인(龍仁) 사람이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에 입대하였다가 1940년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오광심(吳光心)·김효숙(金孝淑) 등과 함께 여군으로 입대하여 제3지대 간부로 활동하였다.
1942년에는 김학규(金學奎) 제3지대장의 인솔하에 일군의 점령지구를 돌파하여 오광심(吳光心)·이복영(李復榮)·신송식(申松植) 등과 함께 중국군 유격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부양(阜陽)에서 활동하였다.
1944년에는 부양(阜陽)에서 군사 교육 훈련을 마친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단의 1기 졸업생들과 함께 신송식(申松植)교관의 인솔하에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중경(重慶)으로 갔으며,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다. 그곳에서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4·319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5권 75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558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77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947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61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207·222·405·4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