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6월 폭탄과
-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정주(定州) 사람이다.
1910년 일제에 의하여 조작된 사내정의(寺內正毅) 총독 암살음모 사건으로 윤치호(尹致昊)·양기탁(梁起鐸)·안태국(安泰國)·이승훈(李承薰)·이동휘(李東輝) 등과 함께 체포되어 기소되었으나, 1913년 3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동지 99명과 함께 무죄 방면되었다.
1919년에는 정주 곽산면(定州郭山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만주로 건너가 김승만(金承萬)·오순근(吳淳根)·김두만(金斗萬)·오능조(吳能祚)·이영식(李英植)·박춘근(朴春根)·김시점(金時漸)·장재순(張裁淳)·신기갑(申基甲)·김찬성(金燦星) 등과 함께 안동현 임시의사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1920년에는 김시점·김승만등과 더불어 대한청년단연합회를 조직하여 통신부장으로서 총재 안병찬, 부총재 김찬성 등과 함께 국외에 근거를 두고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년 6월에는 대한청년단연합회 의용대와 대한독립단이 합류하여 광복군총영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무장항일투쟁에 나섰다. 동년 7월 상순경 그는 영장 오동진(吳東振)의 명을 받아 지중진(池仲振)과 함께 국내에 무기를 반입하려고 임시정부 안동교통 사무국인 이륭양행(怡隆洋行)에서 임시정부특파원 이유필(李裕弼)·홍 리(洪利) 등과 함께 머무르고 있을 때 일경의 습격을 받아 전원이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내란죄명으로 금고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1923년 10월 20일에 가출옥하였다.
1927년 12월에는 평양에서 재만동포옹호동맹(在滿同胞擁護同盟)을 조직하고 조만식(曺晩植)·정세윤(鄭世胤)·이대영(李大英) 등과 함께 실행위원에 선임되어 재만동포의 권익 옹호를 위하여 만전을 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년감 46·71·78·79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74·46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3·344면
- 기려수필 290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5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2권 67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633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261·262면
- 동아일보(1923. 10. 27, 1927. 12. 16)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29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83·28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8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669∼677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44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57·58·6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2권 5·84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707·708·710∼71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6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28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60·761·937·9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