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황해도 옹진(甕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말 민족대표 중 1명인 박희도(朴熙道)와 처남 김명신(金明信)이 옹진의 기독교회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옹진읍의 이경호(李京鎬)는 이 독립선언서를 옹진 각지에 배포하였으나, 3월 1일 이를 알아차린 일본헌병대에 구속되는 등 기독교 중심의 만세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3월 8일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읍내 고천잡화점(古川雜貨店) 앞 네거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13일에도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일로 체포된 함명선은 1919년 6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19. 4. 20)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320~323, 327~3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