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19년 3월 3일 황해도 수안군 일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3월 1일 곡산(谷山)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에 의하여 독립선언서가 수안읍 천도교구장 안봉하(安鳳河)에게 전달되면서 계획이 진행되었다. 그날 한청일은 안봉하·김영만(金永萬)·나찬홍(羅燦洪)·최용식(崔鎔植)·이영철(李永喆)·홍석정(洪錫禎) 등 천도교 관계자들과 모여, 각지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3월 2일 천도교 시일집회(侍日集會)를 이용하여, 김동선(金洞宣)·이달하(李達河)·나용일(羅龍日)·장성도(張聖道)·홍두옥(洪斗玉)·안창식(安昌植)·홍길재(洪吉載)·이윤식(李潤植)·홍두익(洪斗益)·이응호(李應浩) 등과 교구실에서 회의를 갖고, 3월 3일에 군내 각 면 천도교도들을 동원하여 만세운동 및 헌병의 퇴거 요구 등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이에 한청일은 홍석정과 함께 연락·준비·진행을 담당하여 태극기를 만들고, 한편으로는 대천(大千)·오동(梧洞)·연암(延岩)·공포(公浦) 등 각 면의 교도들에게 연락하였다. 그러나 시위 계획을 미리 눈치 챈 헌병대에 의해 안봉하·김영만·나찬홍 등 대부분의 주도급 인사들이 체포되었다.
그렇지만 검거를 피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은 계획대로 감행되었다. 3월 3일 새벽 6시, 한청일은 읍내의 천도교 교구실 앞에서 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2개의 대형 태극기를 선두로 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리고 헌병 분견소로 가서 헌병중위 길야광(吉野匡)에게 조선은 독립되었으니 퇴거하라고 요구하여 퇴거약속을 받아냈다.
오전 11시 각 면으로부터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한 시위군중이 계속 모여들어 사기가 오르자 군중은 헌병 분견소로 달려가 또다시 헌병의 퇴거를 요구하였다. 사태의 긴박함을 느낀 일본 헌병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었고, 시위군중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한청일은 홍석정과 함께 군중을 지휘하여 오후 1시경 시가지를 돌며 만세운동을 계속하였다. 한청일은 군중 1백 50여 명을 이끌고 다시 헌병분대로 몰려가 억류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다 헌병대의 발포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262∼263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編纂委員會) 第12輯 148∼150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