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함경남도 이원(利原) 사람으로 천도교(天道敎)인이다.
1919년 3월 20일 이원군 차호면(遮湖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의 만세운동은 3월 1일 이후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시위를 천도교측에서 제정비하여 조직적으로 감행한 것이었다. 그는 이날 천도교당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친 뒤, 그동안의 시위 때 피검된 동지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헌병주재소로 행진하였다.
그는 주재소에 도착하자,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유리창을 부수며 체포된 인사들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시위군중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해산하였다.
그후 그는 일제의 일제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12월 2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1년 2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었다.
출옥 후에는 1925년 3월까지 천도교 이원군 교구장(敎區長)으로 재직하면서 교인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등 항일운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719·720면
- 매일신보(1919. 8. 22)
- 형사공소사건부(부산지방검찰청)
- 3·1운동비사(이병헌) 9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