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읍(光州邑)내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고종의 인산(因山)차 서울에 올라갔던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 김복현(金福鉉)·서울 유학생 최정두(崔正斗) 등이 1919년 3월 5일 광주로 돌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거사 당일인 3월 10일 오후 3시,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는 천여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양림동의 기독교인, 숭일학교 및 하영자를 비롯한 수피아 학생들은 광주천(光州川) 쪽으로 내려왔고, 농업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은 북문쪽으로 모여들었으며, 서문으로도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왔다.
하영자는 시위군중에게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와 '경고아이천만동포(警告我二千萬同胞)'라고 쓴 경고문을 나눠주는 한편,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시위군중은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큰 사거리로 행진하여 나아갔다.
이날 밤 시위 군중들이 경찰서로 행진하여 나가자, 일경과 일본 헌병들은 총과 칼로 시위군중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한편 주도자들을 현장에서 검속하였다.
그는 현장에서 붙잡혀, 이해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4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4. 30. 光州地方法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