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1921년 평양에서 연통제 실시, 군자금 모집 등의 활약을 하다가 수백명의 일경에게 포위되어 체포되었던 차병수(車炳修) 사건에 연루되자,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이후 주로 길림성성(吉林省城)에서 중국의 각 관청에 요직으로 전전하면서 각방면으로 독립운동을 원조하였다.
1927년 2월에는 분열상쟁하는 재만독립운동단체들을 통일하여 강력한 단일단체를 결성하려고, 남북 만주에 산재하는 독립단 수뇌들과 임시정부를 대표하는 안창호등 중진들이 모여 회의중, 일제에게 매수당한 길림성 공안국장이 중국 경찰 140여명을 이끌고 회의 장소를 습격하여 안창호를 비롯한 독립단 수뇌등 2백여명을 체포하였다. 이에 임시정부를 비롯한 각 단체에서는 중국정부 당국에 석방을 강력히 촉구하였으며, 당시 장작림군내의 경찰청 통역관이며 소교(少校: 소령)로 근무하던 그는 장작림에게 일제 요구의 부당성을 역설하는 등 석방운동을 하여 안창호등 일행은 21일만에 방면되었다.
1928년 2월에는 길림한교문제연구회(吉林韓僑問題硏究會)의 대표로서 정의부 대표인 최동오(崔東旿), 김강기(金剛己) 등과 함께 봉천성장(奉天省長)을 방문하고 재주동포(在住同胞)의 보호를 약속 받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동년 5월에는 정의부·신민부·참의부의 3부통일과 유일당(唯一黨)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대표들이 신안둔(新安屯) 등지에서 비밀회의를 개최하였는데 길림의 일본영사관 경찰은 밀정들을 보내어 이를 탐지하게 하였으나 우리측에 적발되어 사살당하였다.
이에 일측은 중국경찰에 3시협정(三矢協定)에 의한 공동수색을 강요하였다. 당시 중국경찰청에 근무하던 그는 독립군 대표들에게 긴급경보를 보내어 즉시 피신하도록 조치하여 무사하게 되었다.
그후에도 독립군의 무장항일 투쟁을 음양으로 지원하던 그는 1931년 친일분자인 길림교민회장 김정원(金正元)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74·47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274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42·148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72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