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10일 함경북도 성진의 시위는 3월 12일 함경북도 길주와 함경북도 명천의 최남단인 하가면의 시위에 영향을 미쳤다. 명천군 하가면 화대동(花臺洞)에서는 3월 14일 오전 11시 경부터 약 5,000명의 군중이 시위를 전개하였다. 군중들은 화대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시위를 전개하였는데, 헌병의 발포로 5명이 희생되었다. 이 시위에 영향을 받아 명천군 하가면 지명동에 거주하던 최우용은 3월 14일 김상훈(金相勛)·현용묵(玄龍默)·김익련(金益鍊) 등과 협의하여 3월 15일 하가면 화대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최우용은 3월 15일 오전 화대시장에서 약 1,000명의 군중을 이끌고 태극기를 휘날리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후 체포된 최우용은 1919년 7월 1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19년 8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았으며, 1919년 11월 6일 상고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055~1057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8. 22)
- 判決文(高等法院:1919. 11. 6)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750~75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