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2일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長水面) 장수리(長水里) 장수천도교구실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고 장수 군내에 배포됐다.
1919년 2월 28일 이종일(李鍾一)은 인종익(印宗益)에게 「독립선언서」 2,000매를 교부하여, 3월 1일 전주(全州)의 김진옥(金振玉)에게 1,700매를 전달했다. 이어 임실(任實) 교구장 한영태(韓榮泰)가 오후 8시경 「독립선언서」 200매를 받아 3월 2일 박판덕(朴判德) 등에게 임실군내에 배포를 의뢰했다.
오전 10시경 임실군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 천도교도 이기동(李起東)이 장경일(張京日)에게 「독립선언서」 15매를 교부했다. 장경일은 「독립선언서」 1매를 자기 것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를 가지고 장수로 이동했다. 오후 6시경 장수천도교구실에서 장경일이 「독립선언서」 약 12매를 최완식(崔完植)에게 교부하며 밤에 눈에 잘 띄는 곳에 부착하라고 당부했다.
최완식은 신동개(辛東開), 장재만(張在萬)과 함께 교구장 박영춘(朴永春)에게 가서 「독립선언서」와 장경일의 말을 전했다. 「독립선언서」를 일람한 교구장은 최완식에게 7매·신동개에게 3매·양일표(梁日杓)·빈영섭(賓永燮)에게 각 1매씩을 교부했다. 이들은 3월 3일 밤에 장수면·계내면(溪內面)·천천면(天川面)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최완식은 3월 3일 오전 2시경에 장수면 용계리 마을 게시판에 1매, 주민들의 눈에 잘 띄는 곳 6개소에 각 1장씩을 부착했다. 이를 통해 장수 주민들에게 독립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처럼 최완식은 장수군 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장수헌병분견소 헌병에게 체포되었고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검사분국으로 송치됐다. 4월 8일 남원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아 전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1919. 4. 8)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국가기록원)
- 집행원부(執行原簿)(국가기록원)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1919. 4. 8)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5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