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황해도 수안군(遂安郡) 읍내에서 천교도인을 중심으로 전개된 대규모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곡산의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은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에 관한 계획을 천도교 수안교구장 안봉하(安鳳河)에게 전하였다. 한편, 안봉하는 이영철 등 천도교인과 함께 독립선언서 전달 방법과 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한 뒤 3월 3일을 기하여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3일 오전 6시경 이영철은 한청일,홍석정 등 천도교인들과 함께 수안 천도교구실 앞에 모였다. 이영철 등은 선두에서 2개의 큰 태극기를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며 헌병분견대를 향하여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헌병분견소 앞에서 조선 독립과 헌병대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였고, 최양봉은 이영철 등과 함께 헌병대 사무실로 몰려가 분대장 중위에게 분대를 인도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러한 시위는 오후에도 한 차례 더 전개되었다. 그러나 오후 시위에서 헌병분견소로 몰려가 애국 시민 석방과 헌병대 철수를 다시 요구하자, 헌병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일로 최포된 최양봉은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263~265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0. 11. 22)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0. 8. 7)
- 決定文(高等法院:1920.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