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남 광주(光州)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경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둑 소시장에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양림동(楊林洞) 방면에서는 기독교인,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光州川)을 따라 내려왔고 서문거리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오고 농업학교 학생들과 군중은 북문 방면에서 모여들었다. 또 지산면(芝山面) 쪽에서는 수백 명의 농민이 달려왔다. 이렇게 모여드는 군중에게 숭일·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시위대는 태극기를 휘날리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출발하였다. 이들은 서문통(西門通)을 지나 우편국을 돌아 본정통(本町通)을 행진하는 등 광주 시내의 거리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던 최순우는 체포되어 1919년 10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每日申報(1919. 4. 17, 5. 4)
- 判決文(高等法院:1919. 10. 27)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8. 13)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19. 4. 40)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국사편찬위원회) 제4권 4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