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평남 진남포(鎭南浦)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중순경 이승훈은 진남포에서 임치정(林蚩正), 그리고 감리교회 간부급 청년 등을 만나 독립만세운동 거사 계획을 전하면서 만세운동을 준비하도록 지시하였다. 28일 이승훈의 연락을 받은 노윤길(盧允吉)은 평양에서 윤원삼(尹愿三)을 만나 독립선언서 500매를 받아왔다. 노윤길은 동지들을 소집하여 거사 준비에 착수하였다. 거사는 3월 1일 오후 2시 신흥감리교회(新興監理敎會)에서 고종봉도식(高宗奉悼式)을 명분으로 군중을 동원하여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독립선언서 인쇄와 태극기 제작, 교인과 부두미곡중개조합원 동원, 천도교측과의 연락 등 업무를 분담하였다. 이때 신흥감리교회 간부인 최봉인은 집회때 감시차 나온 경찰서 형사가 독립선언서 낭독시 경찰서에 연락하지 못하도록 하는 업무를 맡았다. 3월 1일 오후 2시, 신흥감리교회에 500여 명이 모여 간단히 봉도식을 끝낸 뒤, 사회자가 독립 시위 행진을 선포하자, 군중은 시가 한 복판에서 '대한독립기'를 세우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를 부르며 경찰서를 향해 행진하였다. 경찰서 앞에 도착한 군중이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자, 일본 경찰은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그 자리에서 김기준(金基俊) 부부가 숨지고, 70~80명이 붙잡혔다.
이 일로 체포된 최봉인은 1919년 9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25)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399~40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806~8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