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전북 장수(長水) 사람이다.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山西面) 동화리(桐花里) 장날에 박정주(朴政柱)·정호현(丁豪鉉)·정봉수(丁奉洙)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여,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였다. 이때 주동자 3명이 일헌병에게 붙잡히자 김형택(金炯澤)·이화백(李化伯)·이상욱(李相煜) 등과 같이 200여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구속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구속자들은 구출하였으나, 계속 시위하다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2일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1921년 3월 9일에는 박정석(朴正錫)·박권영(朴權永)을 통해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 130원(圓)을 지원하였으며 그후 1930년까지는 팔공회(八公會)를 조직하여 출옥동지 가족 돕기에 전력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2 광주지방법원 남원지청)
- 판결문(1919. 6. 13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543∼545면
- 전북일지(1978.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