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제주 사람이다. 1920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1922년 동경(東京)의 정칙(正則)영어학교에 재학 중 재일(在日)한국인 유학생의 비밀결사인 형설회(螢雪會) 및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활동했다. 그후 흑도회가 박 열(朴烈)과 김약수(金若水)의 계열로 양분되자 박 열이 주도하는 흑우회(黑友會)에 참가했으며, 사회과학 이론의 연구를 통해 항일사상을 고취하였다. 그러던 중 1923년 관동대지진(關東大地震)이 일어나자 귀향한 그는 1927년 4월 제주면 삼덕리 김형수(金炯洙)의 집에서 김형수·조대수(趙大秀)·강기찬(康箕贊) 등 3명의 동지와 함께 무정부주의 사상의 연구를 목적으로 비밀결사 독서회(讀書會)를 주도조직하였다. 동회는 매달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사회과학서적을 윤독하며 동지규합에 힘쓰는 한편 1927년 10월 소비조합을 결성하여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폈다. 또한 이들은 1929년 5월 독서회의 운영을 위해 우리계(宇利 )란 조합을 결성하였다. 우리계는 표면상 우의돈목(友誼敦睦)·애경상문(哀慶相問)·생활향상을 표방하고 무정부주의적 이상사회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였다. 동 계원에는 도청·은행·금융조합·학교 등의 공무원·실업가와 도내의 유지들이 망라되었으며 계원들은 매월 3백원씩 회비를 은행에 예금하고 노자(老子)의 근(勤)·검(儉)·양(讓)의 사상에 따라 생활하기로 하였다. 동계는 특히 제주도의 전통사회에 바탕 하여 무정부주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 점이 주목되는 단체였다. 이들은 1929년 9월 각 동리(洞里)에 야학을 개설하여 항일민족의식과 무정부주의 사상을 고취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1930년 7월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동년 12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1931년 7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0. 12. 8 광주지방법원)
- 판결문(1931. 7. 14 대구복심법원)
- 한국의 아나키즘운동사(전편) 242·243·244면
- 제주군지(상) 408·409면
- 동아일보(1930. 12. 3, 12. 10)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9권 6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