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천승률은 함북 길주군(吉州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
고를 치렀다.
길주군은 함북에서 천도교가 가장 먼저 포교된 장소이다. 손병희(孫秉熙)의
신임이 두터운 김용수(金龍洙)가 함북 천도교 조직을 짜임새 있게 운영하고 있
었다. 김용수와 박용한(朴庸漢)도 1918년 말 상경하여 손병희를 만나 변하는 세
계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길주로 돌아오자마자 천승률을 비
롯하여 김대용(金大鏞), 권국설(權國卨), 김용희(金用熙), 주두현(朱斗現), 이용
화(李容化), 허춘식(許春植), 김봉수(金鳳洙), 황희종(黃熙鍾), 황희율(黃熙律)등 주요 천도교 간부를 불러서, 단결하여 후일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1919년 3월 11일 밤 천승률은 이용서(李容瑞), 원세율(元世律), 전용희(全用熙)
등과 길주면 길북동(吉北洞) 박서용(朴瑞龍) 집에서, 다음날 12일 길주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결행할 것을 결정하였다. 다음날 천승률, 이태인(李泰
仁), 원세율 등은 1,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길주 읍내를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날 길주에서는 성 밖에서도 미리 연락을 받고 성내로 들
어오려던 군중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날의 시위에서 10명이 구속되었고, 밤부
터 나머지 주도 인물들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었다.
그 후부터 읍내의 경계가 삼엄하여 시위는 이웃 부락으로 번져 갔다. 13일 덕
산면(德山面)과 동해면(東海面), 14일 동해면 용원동(龍原洞), 16일 양사면(暘社
面)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 후 체포된 천승률은 1919년 5월 5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보안
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그는 상고했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
서 각각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17)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1058~1060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756~76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