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진상직은 출판을 통한 민족 계몽을 위해 1908년 태극학회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태극학회가 대한흥학회로 통합되자 대한흥학회 영흥지회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진상직은 고향인 함경남도 영흥군 홍인면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계획했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옛 한국의 태극기를 4매 제작하였다. 3월 16일과 17일 양일간 홍인면 도정리의 김재석 외 여러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찬성을 얻어냈다. 17일 오후 4시 경 남산리 군자루(君子樓) 앞 공터에서 약 20명의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그에 따라 1919년 4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4. 28)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5. 22)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태극학보(太極學報)(1908. 10. 24) 제25호 71면
- 대한흥학보(大韓興學報)(1909. 7. 20) 제5호 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제5집 992~9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