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영양(英陽) 사람이다.
정미의병(丁未義兵) 때 거의(擧義)한 인물이다. 1907년 10월 경북 봉화(奉化)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성운(金成雲) 의병부대에 참가한 뒤, 의병활동에 소요되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총 및 군도(軍刀)로 무장하고 같은 해 11월 21일 밤에 영양 북초(北初) 송정동(松亭洞)에서 60원을 모금하였다. 또한 1980년 4월에는 봉화군 수비면(首比面) 발리동(發里洞)에 살던 금환규(琴煥圭)로부터 싯가 220냥(兩)에 상당하는 성우(成牛) 한 마리를 얻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대구헌병대에 붙잡혀 1911년 3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소위 강도죄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항고하였으나 4월 20일 대구공소원과 5월 8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1. 3. 31 大邱地方裁判所)
- 判決文(1911. 4. 20 大邱控訴院)
- 判決文(1911. 5. 8 高等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