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황해 평산(平山) 사람이다.
1919년 4월 7일 황해도 평산군 보산면(寶山面) 운천리(雲川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평산군의 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인 이동락(李東洛)이 서울의 천도교 중앙총부와 연락하고, 인근 마을의 천도교 간부들과도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전개되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천도교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지시를 받고 3월 2일에 귀향한 이동락이 헌병으로부터 엄중한 감시를 받게되자, 금천군(金川郡)의 천도교인 강창선(姜昌善)에게 위탁하여 비밀리에 계획을 진행하였다.
그리하여 3월 7일 평산읍 장날에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만세운동이 진행되었는데, 시위대는 헌병대의 총격에 의해 해산되고 말았다. 이후 일제 경찰의 감시로 평산군의 독립만세운동은 잠시 주춤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3월 말 경부터 평산군내 각처에서 만세운동이 계속적으로 일어났다.
보산면 운천리의 만세운동은 4월 7일에 일어났다. 당시 61세의 고령(高齡)인 조영은 신관석을 비롯한 3백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조영은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612∼61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