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영천(永川) 사람이다.
1932년 4월 일본 대판(大阪)의 계시교회에서 '삼천리 강산을 나의 무대로 삼아'라는 제목으로 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하다 일경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대판의 한국인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1934년 10월에 '기독청년들아 분기(奮起)하라'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또한 1943년 6월 일본 산구현(山口縣) 후협정(厚狹町)으로 이주하여 일제의 한국인 차별대우의 부당성을 폭로 규탄하였다.
1944년 5월에는 동포들에게 태평양전쟁의 추이와 조국독립의 멀지 않음을 역설하여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한글보존을 위하여 활동하던 중 1944년 8월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일로 인하여 1945년 8월 21일 산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45. 8. 21 산구지방재판소)
- 산구형무소재소증명